<제주 워커스>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를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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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마
@kimtekhwamuseum
조각과 문화예술 기획 일을 하는 작가.
제주 함덕에 자리한 김택화 미술관의 대표이기도 하다.
김택화 미술관을 기획하고, 공간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택화 화백은 제주 출신으로, 평생을 제주 풍광을 담는 데 전력을 다한 인물입니다. 제주 사람으로는 최초로 현대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죠. 꼭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의 작품과 삶을 조명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미술관을 시작했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걸 뜻깊게 생각합니다.
미술관에는 김택화 화백의 작품 외에도, 김도마 작가님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들인가요?
제 작업이 많지는 않은데요 (웃음). 상설 전시 중인 김택화 화백의 유작 외에, 1층에 위한 굿즈샵 상품과 2층 카페 공간에 있는 집기와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했습니다. 특히 가구는 1980년대 한국에서 많이 제작되던 산업용 가구의 형태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테이블 문화가 들어오던 시절 쓰인 식탁과 의자 같은 것들이요. 사실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 요즘보다 재질이나 디자인 면에서 더 훌륭한 경우가 많아요.
이 가구를 만들 때는 제주 바닷가에 떠밀려온 해양 유목을 주로 사용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떠밀려온 고재(古材)*들이 바다를 건너며 풍파를 겪고 짠물에 재워지면서 특색있는 소재로 변하거든요.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제주의 옛 초가집을 만들 때 쓰였던 ‘사오기’와 ‘굴무기’ 고재를 활용하기도 해요. 쉽게 말해 ‘느티나무’와 ‘왕벚나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이런 목재를 사용한 가구는 찾기 쉽지 않아요. 해양 유목과 사오기, 굴무기 고재. 이 세 가지를 조합해서 일종의 리사이클 가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 말 그대로 오래된 목재. 건축물이나 가구를 철거하면서 나온 폐자재, 쓸모를 다한 목재를 뜻하기도 한다.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작고한 김택화 화백의 작품이 상설로 전시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온전히 작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일어날 변화와 흐름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이곳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비록 화백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적 가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그의 가치와 의미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김도마 작가님의 작품은 어떤 주제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꽤 오래 전부터 관심 가져온 주제가 있는데요. 쉽게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만이 하는 행동이나 사람만이 놓이게 되는 상태’를 즐겨 이야기해 왔습니다. 일상에서 언제든 이 주제를 관찰하고 채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스스로와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해 비판적일 때도, 자조적일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기저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어떤 기대감, 그리고 애정도 바탕에 있다고 느낍니다. 제 작업은 주로 언어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메세지를 담고 있고, 그게 곧 시각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작가로서, 선배인 김택화 화백의 작품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언젠가 김택화 화백이 실제로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작품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의지, 그리고 한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에 깊이 몰입했을 때 가능한 어떠한 경지를 보게 되었거든요. 해를 거듭할수록 그때의 감상이나 충격이 또 다른 의미로 계속 이어져 오는 것 같아요. 후배로서 또 동료 작가로서, 매우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창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을 준비하는 시간과 작업에 임하는 시간이겠죠. 때로는 노동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는 물리적인 작업 시간이 있을 테고요. 이 작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 즉 관찰과 채집을 하는 구상 단계가 있겠죠. 실제 작업하는 시간과 구상하는 시간, 이 둘을 분리하려는 편입니다.
사실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 이런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과정에서 작업은 거의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몰입할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억지로 밀어 넣든, 자연스럽게 끌려가든, 그 예민한 상태에 집중하려 노력하죠. 언제나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요.
사실 이건 제 발상은 아니고 제가 존경하는 어떤 조각가가 생전에 힘주어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작업에 몰입하는 상태에 놓이는 게 어려우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김택화 화백은 맹그로브 제주시티의 이웃 동네, 원도심(탑동 주변) 안 남성마을에서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도마 작가님은 화백이 원도심에 머무른 이유, 그리고 그곳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제주시 원도심에는 화백의 작업실이 지금도 네 곳 남아 있습니다. 화백이 살아계실 당시 원도심은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어요. 특히 시각 예술가와 문인, 음악가들이 다방에 모여 전시와 예술에 대한 토론을 활발히 진행하던 동네였습니다.
김도마 작가님도 평소 즐겨 찾는 원도심 공간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저도 사실 원도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요. 중고등학교도 이 동네에서 살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원도심에 가면 마음이 좀 편해요. 모습이 많이 변하지 않은 덕분에 골목골목 잘 알고 있고요.
최근에 즐겨 찾는 곳을 꼽자면 ‘아라리오 뮤지엄’이 있고요. ‘빈공간’이라는 갤러리. 또 친한 동생이 운영하는 ‘송키’라는 카페에 들러 차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육지에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요식업 공간을 운영하시잖아요. 마음 맞는 친구랑 그런 곳에서 술 한 잔도 즐겨 합니다. 동문시장, 서문시장도 즐겨 가고요. 아마 앞으로 맹그로브 제주시티에도 자주 가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웃음)
해외에서도 활동하시다가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주에 정착하게 된 매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건강상의 이유로 제주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김택화 화백 기념 사업과 문화 기획 같은 활동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마침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가끔 도시가 그립지만 언제든 갈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주의 매력은 역시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 아닐까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나요?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바다에 들어가 문어, 쥐치, 거북복, 광어를 잡고, 젖은 몸으로 술 한잔하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힐링입니다. 예전에는 애월읍 한담 바다를 자주 찾았는데, 지금은 쉽지 않네요. 그래도 여전히 한담 바다의 모래 지형이라든가, 갯바위가 어디 쯤에 어떻게 나 있고, 어디에 가면 어김없이 문어가 있는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바다 말고도 조천읍 동백동산을 걷거나, 제주시 원도심에서 마음 맞는 친구와 한잔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작가님에게 가장 ‘제주다운’ 곳은 어디인가요?
기대와 약간의 냉소를 담아 말씀드리자면, 제주다움은 많이 흐려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다움은 충분히 복원 가능하다고도 믿습니다. 그에 대한 기획을 하고 싶어요.
작가이자 공간 운영자로서 두 역할을 함께 해내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두 가지를 크게 다르다고 구분 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미술관을 운영하면서도 잘 해내야겠다고 초점을 맞췄던 것 같습니다. 김택화 화백처럼 정통한 작가를 조명하는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오롯이 그 작가를 대중에게 알려야 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태도와 미술관을 운영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꼽자면, 확신과 의지입니다. 전쟁이나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늘 이길 수는 없지만, 노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화백의 작품 속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담은 확신과 예언이 녹아 있어요. 이 김택화라는 사람, 또 원도심이나 다른 제주 지역에 그의 어떤 발자취가 남아 있는지, 오롯이 알리는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아직 너무 많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그의 가치와 의미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글 | 임정연, 박준하
영상, 사진 | Peace 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