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IRCLE
‘아티스트 서클’은 동시대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맹그로브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일러스트 및 크래프트 작가, 음악가, 만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에게 맹그로브의 주거 공간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2021년 서울, 국내 최대 규모 코리빙 맹그로브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동시대 작가 4명의 흥미로운 맹그로브 라이프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필름 카메라에 담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서클’ 프로그램을 위해 뉴욕에서 온 카투니스트 로건은 특유의 에너지로 누구보다 즐겁고 북적한 일상을 일궜다. 공용 주방과 루프탑에서는 매주 파티가 열리고, 걸어가는 길목마다 친구들의 웃음이 만발했다. “처음 뉴욕 땅을 밟았을 때처럼 골목, 횡단보도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게 느껴졌어요. 맹그로브에 지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는 만큼 영감도 가득했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 로건은 이미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손때 묻은 노트를 건네며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림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그림쟁이’가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을 그리는 그 순간 또한 한 컷의 유쾌한 카툰으로 모두의 마음속에 그려 넣어 주었다.
모두 힘들다고 말리는 그림쟁이로 살고 있는 걸 보면, 저는 낭만파인 것 같아요.
Q. 위트 있고 유쾌한 성격이 카툰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더 유쾌하고 재미있을지, 그리고 읽는 사람도 조금 더 흥미가 생길까 항상 고민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활하다 보면 ‘아, 이 순간을 만화로 그리면 재밌겠다!’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 때가 있어요. 반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 때도 있는 그대로 그리면 일기처럼 밍밍한 기록으로만 그치게 될 것 같은 이야기들도 있죠. 오히려 슴슴한 느낌이 더 좋아서 만화적인 표현이나 수정을 크게 넣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요.
Q. 뉴욕에서의 작업과 서울에서의 작업이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해요.
삼시 세끼 사이에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기본적인 생활 패턴은 변함이 없어요. 방 안에서도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주변 환경에서 받는 영향의 범위는 오롯이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것은, 맹그로브에 지내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이 늘어난 만큼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Q. 뉴욕 베이스의 아티스트에게 신설동이라는 동네는 낯설었을 텐데요.
4년 만에 한국에 왔어요. 골목과 횡단보도 하나하나 모두 새롭게 다가왔죠.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아서 무언가 필요할 때 멀리까지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점이 편하더라고요. 평소 거리에서 기념품이나 쓸모없는 것들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뉴욕으로 돌아갈 때 짐이 너무 많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어요.
Q. 만화가의 방이라기보다 운동하는 사람의 방 같기도 하네요.
놀러 온 친구들마다 냉장고나 수납장에 있는 음식과 보충제를 보고 놀라곤 해요. 책상 위에는 랩탑, 그림 그릴 때 쓰는 타블렛, 간단한 스케치와 아이디어 정리용 스케치북과 필통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작업할 때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스피커도 늘 옆에 두고요. 방을 크게 꾸미는 편은 아니지만 신설동 길가 노상에서 구매한 덤벨과 중고서점에서 구한 만화책들도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에 대해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감이 되죠.
Q. ‘아티스트 서클’에 지인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되었죠.
지인을 통해 소개받고 맹그로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컸어요. 실제로 살아보니 사생활이 충분히 지켜지는 개인 공간은 물론 다양한 국적의 이웃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사람도,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플렉스룸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는 풍문을 들었어요. 매일 하는 운동이란 로건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방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플렉스룸에서 보냈어요. 주변에서 별도로 운동 시설 찾을 것 없이 기본적인 운동은 할 수 있도록 꾸려진 공간이라서 좋았죠. 평소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한번 뱉은 말이나 목표는 지키려고 노력해요. 운동은 스스로와 하는 약속 중에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루 24시간 중 좋아하는 일에 단 2시간이라도 꾸준히 투자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복도를 함께 걸으면 로건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공용 키친이 가까워서 끼니 때마다 요리를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꼭 대화를 길게 하지 않더라도 한두 번 마주치다 보면 다른 모임에서 만났을 때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주로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모임을 자주 가지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아요.
Q.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에서 영감을 얻는 사람인가요?
평소 일상툰을 주로 그리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을 좋아해요. 단순히 ‘그릴 거리’가 생긴다기보다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과거, 성향,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들에 대해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감이 되죠. 입주민들이 작은 소모임을 열 때 참석하거나, 부엌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먼저 대화 시작해 보길 추천해요. 맹그로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중에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신설동 길가 노상에서 구매한 덤벨과 중고서점에서 구한 만화책들이 있어요.
Q. 흑백 카툰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는 주간 연재본이 나오는 만화 잡지조차도 몰라서, 한두 달에 한 번씩 책으로 묶어서 정발본이 나올 때만을 기다렸다 만화 책방에 달려가 읽곤 했어요. 그때 좋아했던 만화들은 모두 흑백이었고, 흑백 페이지들을 보면서 머리카락, 옷, 건물, 동물들의 색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재미있게 읽었어요. 만화에 색을 입히면 그만큼 독자들이 상상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필요할 때는 컬러를 사용하기도 하고, 채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바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요.
Q. 복잡한 툴을 사용하지 않고도 슥슥 잘 그려내는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잉크와 펜촉만으로 만화 원고용지에 그리는 거예요. 현실적으로 작업과 수정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하늘과 땅 차이라 일정 부분 타협해서 디지털 작업을 하고 있죠. 대단한 툴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괜찮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릴 때는 그리는 저도, 봐주는 사람들도 즐겁기를 하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서 보아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서 보아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Q. 맹그로브에서 가장 ‘카투닉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한국에서 12년 만에 처음 챙겨보는 빼빼로데이를 꼽고 싶어요. 맹그로브에서 지내면서 도움을 받고 친하게 지낸 여성분들에게 줄 빼빼로를 이른 새벽 편의점 가서 구매했어요. 직접 손 편지를 쓰고 외국인 친구가 쓰는 편지의 번역을 도와주던 그 순간이 마치 러브 코미디 만화처럼 느껴졌어요.
Q. 직접 그린 포스터를 붙여 사람들을 모으고, 파티를 열기도 했잖아요.
할로윈이 끼여있는 주말 금요일 저녁에 첫 모임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올까 염려했는데 20층 루프탑에서는 물론, 공용 키친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사람들이 많이 들러 주어서 그날 열 명이 훨씬 넘는 입주민 분들과 인사를 나눴어요. 어설픈 호스트였지만 코리빙 특성상 여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자리가 된 것 같아요.
Q. 로건님의 히어로는 누구인가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라는 만화의 올마이트라는 캐릭터가 저의 히어로예요. 존재 자체로 사람들을 안심시켜주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힘, 에너지, 능력을 모두 갖춘 캐릭터죠. 만화에서처럼 악당에게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언제나 즐거움과 평안함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웃음을 주고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Logan
글 | 신다보미
사진 | 이석현, 로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