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코리빙 하우스의 삶은 팀 스포츠와 닮아 있습니다. 특히 ‘경쟁’보다 ‘포용’을 강조하는 스포츠 ‘코프볼’과 많은 부분에서 맞닿아 있죠.
맹그로브 동대문에 살고있는 맹그로버 이승빈 님에게,
함께 사는 스포츠 ‘코프볼’과 맹그로브 라이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맹그로브 동대문에서 3년째 살고 있는 이승빈이라고 합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현재는 프로그래밍과 콘텐츠 공부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코프볼(Korfball) 선수이면서, ‘서울코프볼클럽(Seoul Korfball Club)’ 운영자이기도 하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교육대학교 안에 있던 동아리에서 시작해서 졸업생들이 코프볼 클럽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저희 ‘서울 코프볼 클럽’이랍니다. 아직 공식적인 법인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한 코프볼 단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국제 코프볼 협회와 소통하면서 여러 국제대회에 나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코프볼이라는 종목은 사실 처음 들어봤어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코프(Korf)는 네덜란드 말로 바구니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높은 장대에 달린 바구니에 공을 넣어서 골을 만드는 스포츠예요. 1902년에 네덜란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고안해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대만을 통해 처음 들어온 걸로 알고 있어요.
코프볼을 영어로 하면 배스킷볼(Basketball)이군요. 농구와 이름이 비슷하네요?
처음 코프볼을 접하는 분들께는 농구랑 비슷하다고 설명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꽤 달라요. 코프볼은 농구와 다르게 남녀가 함께 경기에 임하는 혼성 스포츠이고, 드리블이 없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골대 높이도 3.5m로 농구보다 더 높죠. 골대 뒤 공간도 열려 있고요. 이 때문에 필요한 기술과 전략도 달라요. 양쪽 골 바구니에 골을 넣는 기본 틀은 비슷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많이 다른 스포츠랍니다.
남녀가 같이 경기를 치른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재밌는 게, 여자 선수가 강한 팀이 이점이 많아요. 실제로 여자 선수들의 득점률도 높은 편이고요. 수비가 보통 1:1로 진행되는데, 여자 선수들의 움직임이 대체로 섬세한 편이거든요. 또 규칙상, 남자가 여자를 수비할 수 없고, 여자가 남자를 직접 수비할 수 없어요. 덕분에 전술적으로도 더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하답니다.
이밖에 코프볼만의 매력을 딱 한 가지 꼽아본다면요?
말씀드렸듯, 코프볼에는 드리블 기술이 없어요. 대신, 골대로 진입할 때 패스와 움직임으로 수비를 뚫어야 해요. 덕분에 선수 간 협동과 호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코프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스포츠거든요.
초등학교 교사가 창시한 것답게, 신체적 능력 차이를 규칙으로 상쇄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고민한 흔적이 녹아 있어요. 농구는 공격 상황에서 수비수가 앞을 막고 있어도, 슛을 성공시키면 득점으로 인정하는 반면, 코프볼에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슛을 하게 되면 공격권이 넘어갑니다. 그 즉시 동료에게 패스해서 수비를 따돌리는 순간에만 슛 기회가 생겨요. 이게 진짜 찰나의 순간이거든요. 그래서 팀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대회에 나가서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만들어가는 한 골, 한 골의 기쁨이 지금까지 코프볼을 할 수 있는 큰 매력이에요.
국제 대회도 여럿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코프볼도 월드컵처럼 4년에 한 번 ‘월드 코프볼 챔피언십(World Korfball Championship)’이 열립니다. 이 대회에 나가려면 지역 예선을 거쳐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본선에 진출한 적은 없고요. 저는 2018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챔피언십에 참가했던 게 가장 큰 경험이었어요. 2023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재팬 컵(Japan Cup)에, 작년 2024년에는 아시아 코프볼 챔피언십(Asia Korfball Championship)에 출전했답니다.
과정 속에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023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코프볼 동아리가 거의 해체 직전인 거예요. 코로나19 상황도 있었고, 부원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죠. 사람이 별로 없으니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도 없고요. 그때 함께할 사람을 구하려 본격적으로 나서봤어요. 학교에서 설명회도 개최해 보고, 훈련 프로그램도 만들어 보고요. 특히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콘텐츠를 쌓아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단순하게 기록이라도 남기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조회수보다도 영상에 친구가 나오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나도 해볼까?’ 생각하게 된 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 느리고, 소박하지만 지금은 4~50명 정도 되는 클럽으로 성장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저희 팀 공식 대회 첫 승이라기보다는, 6년 만에 승리한 경기가 있었는데요. 아시아 코프볼 챔피언십에서 싱가포르를 상대로 경기했는데, 저희가 이겼어요. 그땐 제가 아쉽게 함께 못 뛰었는데, 멤버들과 함께 유튜브 라이브를 보면서 응원했던 기억이 나요. 2년 간의 노력이 이렇게 결실을 보는구나. 너무 장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그로브는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코프볼을 시작하고 승빈 님 스스로 “성장했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을까요?
코프볼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제가 오랜 수험생활을 한 탓도 있고 성격이 활발한 편이 아니어서 남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코프볼을 하면서 팀과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챙기고 운영하면서, 멤버 한명 한명을 살피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람을 대하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릇이 조금은 커진 것 같습니다.
또, 코프볼 경기를 하면서 만나는 외국 친구들의 이유 없는 환대를 받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친절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코프볼을 하면서 유튜브, 팟캐스트 같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면 코프볼이라는 운동을 제일 잘 즐길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면 코프볼을 가장 좋아할까요?
먼저, ‘열정적인 사람’이요. 처음 배우는 스포츠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같이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요. 개인의 성취를 넘어 팀의 성취에 관심이 있고,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코프볼에서 ‘팀’으로서의 소속감도 얻어가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프볼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그릇이 조금은 커진 것 같아요.
맹그로브는 어떻게 알고 살게 되었나요? 또 여기서 만난 인연이 있다면요?
군대에서 돌아와서 서울에서 지낼 곳을 찾아보다가 맹그로브 동대문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때는 6인실 도미토리 룸에서 지냈는데요. 그때 만난 인연들과 아직도 연락하면서 지내요. 프랑스인 친구도 있었고요. 지금까지도 한달에 한 번 독서 모임 같이 하는 친구도 있어요. 또 이때 제 위 침대에서 지내던 룸메이트와는 지금도 2인실에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답니다. 물론 코프볼 모임에도 초대했었어요.
‘경쟁’보다 ‘포용’을 강조하는 스포츠 코프볼과, 다양한 사람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뉴리빙 커뮤니티, 맹그로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이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맹그로브에서 이런 ‘포용’을 느낀 순간이 있었을까요?
함께 사는 경험을 통해 제 개인적인 성장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6인실이나 2인실 모두, 누군가와 함께 살기 때문에 불편함이 있죠. 청소, 생활 루틴부터 개인적인 컨디션 같은 여러 변수가 많이 있어요. 그런데도 같이 살면 불편함만큼 위로받을 때가 많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누군가에게 좀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러니까요. 가족들이 다 경상남도 마산에 있어서, 가끔 외로울 때가 있는데요. 코프볼 모임이나 맹그로브가 그런 마음을 달래줄 때가 많습니다.
불편함마저도 이해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 그게 포용이 아닐까 생각해요.
맹그로브 소셜 클럽(Mangrove Social Club)에서 코프볼 모임을 열어봤는데 어땠나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코프볼을 맹그로버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부원들도 함께 즐긴 시간이라 더욱 뿌듯했습니다. 크게 다치신 분들도 없고 저희가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많이 뛰고 웃으면서 즐겁게 하시다 간 것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맹그로브 동대문에서 보내는 하루 일상을 말해줄 수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을 걷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다음, 방에서 간단히 할 일을 하고 점심쯤 집을 나섭니다. 신당에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서 취업 준비를 하기도 하고, 유튜브 편집을 하기도 해요. 날씨가 좋으면 저녁에 청계천에 나가서 러닝을 하기도 합니다. 밤에 룸메랑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고요. 매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에는 코프볼 훈련을 합니다.
맹그로브 동대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코프볼 모임을 하고 뒤풀이는 보통 맹그로브 동대문에서 갖는 편이에요. 특히 15층 캔틴을 애용하죠. 저희의 비공식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맹그로브 동대문이 서울 어디든 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잖아요. 바로 맞은편에 버스 정류장도 있고, 광희동 뒤쪽에는 야간 심야 버스들도 다 거기 서요. 서울 어디든 대중교통이 이어져 있어서, 부원들이 집에 갈 때 아주 좋아해요. (웃음)
맹그로브 동대문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시아’라는 양꼬치 집을 좋아합니다. 중앙아시아에 온 것 같은 기분도 좋고, 음식 가격도 저렴해서요. ‘청계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깅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다녀올 수 있고, 물소리도 듣기 좋습니다.
승빈 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혹은 어떤 곳이었으면 하나요?
저에게 집은,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현관문 밖에 걱정이나 근심은 덜어버리고, 이곳에서는 많이 웃으면서 충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집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코프볼을 핑계 삼아 콘텐츠를 소소하게 만들었었는데, 콘텐츠를 만들고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행복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아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코프볼 협회를 정식 출범해 보고 싶습니다. 2년 뒤에 네덜란드에서 월드 코프볼 챔피언십이 열리거든요. 여기 나가보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선수들이 해외 경기를 나가려면 사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에요. 공식 법인이 되어 협회의 지원금으로 참가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글 | 이성국, 박준하
사진 | 이라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