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nock, knock 노크, 노크 >
7 personals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크리에이터 7인의 방을 소개합니다. 음악, 디자인, 식물, 사진, 요가, 인테리어, 퍼포먼스 등 다양한 개성의 라이프스타일과 깊고 내밀한 취향을 담은 7개의 방을 두드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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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한 THE MINI HAN
@mini_han
이태원 클럽 <트렁크>, 한남동 <미니바>를 운영하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합니다.
표현의 경계를 넘나드는 트랜스젠더 한미니의 라이프 스토리와 메타포로 가득 찬 공간입니다.
Q. 이태원 클럽 씬에 새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했던 <트렁크>가 5년의 시간을 끝으로 막을 내렸어요. 애정과 추억이 가득한 공간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트렁크는 어떤 공간이었나요?
트렁크는 한국 씬에는 없었던 디스코와 하우스를 베이스로 한 게이 클럽이었어요. 트랜스젠더인 사장과 드랙퀸들이 어우러져서 흔히 말하는 디스코 걸 문화를 게이 커뮤니티에 녹여낸 새로운 시도였어요. 용기가 부족한, 하지만 ‘여심’이 있는 친구들의 대리 만족의 공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이 어우러져서 대한민국의 음지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를 넥스트 스텝으로 이끄는데 일조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5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를 찍은 계기도 사실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예요. 게이, 스트레이트,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어요.
Q. 이번 노크노크에서는 한미니의 다양한 라이프 스토리와 메타포로 가득 찬 공간을 완성했어요. 미니님의 방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사실 처음 제안을 받고서, 무엇을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방에 들어갔어요. 4평 남짓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청소년기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딱 그 만한 방에서 지냈거든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헤비 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인 아버지의 유명세 아래 혼란스럽게 자랐던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반지하에 미닫이 문이 있는 방이었어요. 부모님의 불화를 당연하다고 감내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던 어린 아이의 공간이었죠. 1998년도 <보그> 잡지가 처음 나왔을 때 설레며 잡지를 들춰보고, <별은 내 가슴에>와 동아티비에서 생중계 해주는 패션쇼를 보면서 순수하게 디자이너를 꿈꿨던 공간이기도 했고요. 강압적이고 센 아버지를 상대하면서 덩그러니 앉아 꿈을 꿨던 어린 시절의 공간을 재현해 보았어요.
이 방은 한미니라는 사람의 아카이브, 나의 히스토리예요. 한 아이가 너무 입고 싶었던 알라이아 드레스를 입게 되고, 결국에는 <보그>지의 알라이아 뮤즈가 되어 7페이지 화보를 찍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완성이기도 하고요.
이 방은 한미니라는 사람의 아카이브, 나의 히스토리예요.
Q. 노크노크 전시 내 창 한 켠을 가득 채운 콜라주들처럼 패션 잡지를 스크랩하는 것을 즐겼다고요. 미니님의 어린 시절 뮤즈는 누구였나요?
90년대 슈퍼모델들을 너무 좋아했어요. 신디 크로포드,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이런 여성들이 지아니 베르사체 컬렉션에서 과감하게 가슴을 흔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런웨이를 누빌 때, 사진작가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광경이 저의 영감 그 자체였어요. 타이라 뱅크스의 당당함, 나오미 캠벨의 못된 애티튜드, 비욘세의 섹시함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데’ 하고 생각하면서 수도 없이 연습했어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 날이면, 드럼 스틱으로 미닫이문의 창을 자주 깨곤 하셨어요. 어린 나이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가 좋아하는 보그 잡지의 화보 이미지들을 오려 구멍 난 창을 메우는 일이었죠.
Q. 5년째 미스 인터내셔널 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계시잖아요. 우승도 하셨고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꾸민 이 공간에서 다시금 한 번 실감해 보는 현재의 위치는 어떤가요?
내가 생각한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는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나는 이게 되고 싶어’라고 대답하듯 살아온 것 같아요. 끝까지, 힘들지 않게, 재밌게, 세련되게, 아름답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힘든 것도 즐겼거든요. 똥 밭에 가면 최고의 똥이 되려고 했고, 쓰레기 밭에선 그중에 최고의 쓰레기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정말로요.
미스 인터내셔널 퀸의 경우는 제가 우승하기 전후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Q. 미니님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하잖아요.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정다운 애정과 따뜻한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예요?
진심이고 순수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재미! 그게 다예요. 그래서 제 주변엔 항상 최소 15년 지기 친구들이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건 저에게 안정이에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되어줬다고 생각해요. 애정결핍에 모났던 제가 ‘Chosen Family’ 덕분에 남에게 기댈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미스 인터내셔널 퀸에 나가게 된 것도 친구 덕분이었거든요.
‘너는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나는 이게 되고 싶어’라고 대답하듯 살아온 것 같아요.
Q. 지금의 한미니, 미니 한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그냥 미니 한이에요. 미니 한 그 자체가 프라이드이고, 브랜드고, 나예요. 이게 나라는 것을 이 순간에 여기 앉아서 이렇게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저의 5년 뒤, 10년 뒤가 너무 궁금해요.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Q. 메이크업 실력을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다고요. 미니님을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꽃 피우는 여정에 뒤에 언제나 계셨을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실지 궁금해져요.
아버지는 저를 사대주의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었어요. 팝송과 헤비메탈을 항상 틀어 놓으셨죠.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였던 아버지를 따라 항상 공연을 다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따라간 나이트클럽에서 밤의 세계의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디스코 음악, 디스코 걸 언니들의 스모키 메이크업과 뾰족구두, 망사 스타킹을 보며 자랐어요.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을 대낮부터 마구 뿜어내는 화려한 분이셨어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매일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엄마가 학교에 등장하면 선생님들도 모두 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요. 스모키 화장에 웨이브 펌, 가슴이 패인 옷을 입은 엄마는 인형이었어요. 엄마가 다니던 백화점, 원단 시장, 명동의 디자이너 하우스, 작업실들에 항상 저를 풀어놓으셨어요. 원단을 만지고, 미싱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제 미적 감각이 그곳들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Q.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미니님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자연스러움이죠. 자기가 자기답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세련된 것 같아요. 누구인 척하는 것은 어느 순간 티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상스러운 모습도, 술 취한 모습도, 일을 잘 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울 때 향기를 풍기는 것 같아요.
Q. 훌륭한 몸매를 유지한다는 것은 곧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미니님이 가진 꾸준함의 비결을 묻고 싶어요.
사실 저는 덩치도 크고 살집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먹는 걸 너무 좋아했고요. 학창 시절에 CA 활동으로 에어로빅을 하게 되었는데 아줌마들이 모두 복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아줌마들에게 출처를 물어 구매한 복대를 계속 차다가 돈을 모아 코르셋을 사서 서른한 살까지 찼어요. 젊을 때는 굶기도 하고, 오바이트도 하고,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몸매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2014년도부터는 결심을 해서, 퍼스널 트레이닝 하는 곳에서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건강한 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트렁크에 오는 친구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멋진 몸, 아름다운 스타일, 꿈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의 꾸준함의 비결인 것 같아요.
자기답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세련된 것 같아요.
누구인 척하는 것은 어느 순간 티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Q.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큰 꿈이 있어요. 우리의 ‘Chosen Family’들이 각자의 집에 살면서 종종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맹그로브같이 하나의 건물에서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도 가까이 친구들이 살고 있어요. 5분 거리에 사는 친구들이 강아지를 돌봐주기도 하고, 편해요.
Q. 미니님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에요. 방귀를 뀌어도 되고, 옷을 아무렇게나 입어도 되고, 밥을 세 개 시켜서 먹어도 되고, 냅다 누워서 넷플릭스만 봐도 되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내 스스로를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풀어놓아도 되는 곳이죠.
Q. 노크노크 방을 꾸미면서 떠올랐던 장면이 있나요?
앙드레김이요. 저에게는 정말 상징적인 것이에요. 대한민국의 삼십 대들에겐 앙드레김에 대한 어떠한 이미지가 있거든요. 앙드레김이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샤넬이 주는 것과 또 다른 앙드레김만이 줄 수 있는 패션 판타지, 돈만으로 살 수 없는 화려함,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분위기와 무드.
트렁크를 통해 성공을 이루고, 마음속 서랍을 들쳐 보니 그곳에 앙드레김 드레스가 있더라고요. 그때 앙드레김 드레스를 샀어요. 노크노크 전에서도 그 드레스를 보실 수 있답니다. 이번 전시는 저의 히스토리로 시작해서 앙드레김 드레스로 끝나는 미니 한의 아카이브 그 자체예요.
Q. 언제 어디 있을 때 가장 자기답다고 느끼나요?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나 같아요. 친구들과 없을 때는 또 다른 사람이 돼서 잘 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무식하고, 멍청하고, 재밌고, 유쾌한 제 모습 그대로예요. 일 끝나고 먹는 순대 국밥 하나에 즐거운 사람들이거든요. 지금도 그게 모토가 되서 미니바에서는 와인과 함께 김밥을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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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9. 7 (WED) – 22. 10 .7 (FRI)
12:00 – 19:00 Monday off
중구 퇴계로 334, 맹그로브 동대문 15F
글 | 신다보미
사진 |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