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IRCLE
‘아티스트 서클’은 동시대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맹그로브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일러스트 및 크래프트 작가, 음악가, 만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에게 맹그로브의 주거 공간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2021년 서울, 국내 최대 규모 코리빙 맹그로브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동시대 작가 4명의 흥미로운 맹그로브 라이프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필름 카메라에 담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만나보세요.
숲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을 만들고 나누는 크래프트 예술가 라일락은 초록에서의 시간을 마음 깊이 품었다. “숲에서 한 달 동안 생활했던 경험이 있어요. 생태 마을 디자인 교육(EDE; Ecovillage Design Educa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시간을 보냈어요. 직접 나무를 패서 불을 떼고 밥을 지어먹고, 생태 자전거로 물을 길어 생활했어요. 이때 만났던 친구들이 뜨개 브라렛을 입고 다녔는데요. 뜨개 브라렛만 입고 일을 하다가도 계곡에 풍덩 들어가 수영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어요. 기존에 알던 브라의 이미지가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죠.”
숲에서의 이야기들을 보따리에 고이 담아 돌아와 직접 뜨개 브라렛과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판매를 하게 되면서 ‘소울보따리’라는 브랜드도 운영하게 되었다. 14층 복도 끝 네모난 창을 향해 걸으면 나오는 맹그로브 1411호, 라일락의 방 곳곳엔 자연이 자리했다. 매끈한 조약돌과 흙냄새를 풍기는 인센스 스틱,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초록 식물들과 편안한 아로마 향이 손님을 반겼다. 숲의 흔적들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간직하는 그녀만의 작은 세계였다.
예술가의 역할은 포용과 다양성을 담아,
세상에 무수한 빛깔이 존재함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크래프트, 음악, 글, 그림 등 다양한 작업물로 ‘표현하는 창작자’ 같아요.
예술 교육을 나가면 ‘잘 했는지’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는데요. 저는 늘 예술은 그 자체로 다양하며,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예술가의 역할은 포용과 다양성을 담아, 세상에 무수한 빛깔이 존재함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는 예술가로서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먼저 그런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느껴요.
Q. 온화한 미소 속 평온함이 엿보여요. 그런 라일락님에게도 두려움이 있나요?
사실 항상 평온하고 차분하진 않아요.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 연습을 해나가고 있어요.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사랑으로 와서 사랑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데 사랑하지 못할 때 가장 아픈 거 같아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두렵게 하는 것은 많지만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공용 복도 끝 창가에 놓인 향초에서부터 라일락님의 오라가 느껴지네요.
집은 저에게 재충전과 영감의 공간이에요. 과거 전시했던 도자기를 오브제로 두기도 하고, 곳곳에 향초와 인센스 스틱을 뒀어요. 자연의 향기를 좋아하는데 그 느낌을 전해주는 아로마 오일도 애용하는 편이에요. 덕분에 집에 들어오면 편안한 향기가 저를 맞이하죠. 친구들이 만든 드림캐처와 초, 그림, 편지를 곳곳에 두어서 친구들이 곁에 있는 느낌을 계속 기억하려고 해요. 자연에서 온 돌이나 조개껍데기, 식물도 뒀어요.
도시 속에서 이런 느슨한 연결이라니. 신선하고 따뜻했어요.
Q. 집으로서 맹그로브는 어떤 인상이었나요?
새로 인테리어를 한 20층 고층 건물이라고 하니 왠지 따뜻함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 같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 안에서 다양한 연결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마인드풀니스, 환경 보호 같은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맹그로브에서 살다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입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키친에서 요리를 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해요. 무엇보다 서로 뜻이 맞는다면 모여서 작은 모임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도시 속에서 이런 느슨한 연결이라니. 신선하고 따뜻했어요.
Q. 맹그로브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면 공유해 주세요.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20층 루프탑에서 사진을 찍고 놀았어요. 사진을 찍다가 갈대밭 사이사이 로즈마리가 가득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죠. 로즈마리 오일을 평소에 좋아해서 더 반갑더라고요. 루프탑의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며 로즈마리 향기를 깊게 마시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 그리고 맹그로브 앞 떡볶이 포차 정말 맛있어요!
Q. 멤버들의 주거와 성장을 함께 고민하는 맹그로브, 직접 살아보니 어땠나요?
맹그로브가 각 공간의 특색을 잘 살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곳에 오고 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일이 잘 되는 것을 느꼈어요. 일을 할 때는 효율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코워킹 스페이스, 영감이나 참고할 자료가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라이브러리, 산과 하늘을 보며 환기할 수 있는 루프탑까지 한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이 정말 편리했던 거 같아요.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작업을 이어가려면 몸과 마음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더라도 근력 운동을 할 수 있는 플렉스룸과 요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릴렉스룸이 있어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다양한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는 맹그로브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Q. 코리빙 하우스에서의 두 달,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을지 궁금해요.
맹그로브 멤버들과 신설동 주변을 1시간 정도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줍는 ‘줍깅 클럽’ 모임을 함께 했어요.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함께 지구를 청소한다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했죠.
한 번은 소개 영상을 찍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영상 기술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맹그로브 직원 클로이를 비롯해 외국인 친구, 요한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하는 등 여러 기적 같은 손길이 나타나서 하루만에 일사천리로 무사히 작업을 마쳤어요. 다양한 친구들과 연결될 수 있는 맹그로브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하루 만에 작업을 마치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인터뷰를 빌어 친구들에게 다시 깊은 고마움을 전해요.
Q. ‘숲에서 온 리추얼’이라는 주제로 맹그로브 소셜 클럽을 진행 했어요.
프로그램 준비를 하면서 숲에서 지냈던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곳에서의 시간이 저에게 여전히 힘과 영감을 주고 있음을 느꼈어요. 또 리추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의 배움들을 계속해서 나누고 싶어요.
누군가가 말해줬는데 사소한 것에 진심을 담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Q. 아티스트 라일락의 작업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있나요?
다양한 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특히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불편한 속옷을 입고 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잖아요. 몸에 대한 다양한 ‘알아차림’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숲을 닮은 오브제와 주얼리를 꾸준히 만들고 싶어요. 숲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움과 생명력을 전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요.
Q. 요즘 다지는 마음가짐이 있나요?
11월이 시작할 때 달력에 적어두었던 이달의 모토가 있는데요. 사소한 것에 진심을 담는 것이에요. 누군가가 말해줬는데 사소한 것에 진심을 담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을 바꾸려면 거창한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별것 아닌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Lilac
글 | 신다보미
사진 | 이석현, 라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