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게 쓸모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2024.11.18

하이커하우스 보보 | 조현수

<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조현수
@hikerhaus_vovo

간소하고 지혜로운 하이킹 문화를 나누는 하이커하우스보보 대표. 보보 步步에서 걸을 때 필요한 에너지원과 용품을 판매한다. 조현수 대표는 글로벌 F&B 기업에서 일하다 스스로를 찾아 제주에 가게를 열었다.


 

어떻게 제주, 서귀포에서 창업하게 되었나요.

시스템이 잘 구축된 F&B 글로벌 기업 관리직으로 근무했는데,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서귀포로 거주지를 옮기며 제주 살이를 시작했어요. 당시 배운 서비스와 고객에 대한 태도는 평생 자산으로 남았지만, 소모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를 감행했습니다. 2년간 쉬며 부지런히 섬을 걸었고, 걸은만큼 많이 보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하던 1세대 아웃도어 용품 매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초여름 하이커하우스보보라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제주 여행자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죠. 진행한 프로그램 중 개인적으로 의미있거나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려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소중한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요. 하이커하우스 보보 카페 2층에서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 콜라주플라츠를 운영하며 공연 예술을 기반으로 여러 예술가를 지원하죠.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이른 아침 숲을 걷고 나서 검소하게 차린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모임의 보보조찬 步步粗餐입니다. 2023년 9월에 시작해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진행해 왔고, 오픈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속 중입니다. 지난 4월에는 베러위캔드 주관으로 메뉴팩트와 함께 보보조찬을 확장한 하이킹 이벤트 OCSC(Outside Coffee Service Center)를 진행했는데요. 보보조찬이 세월이 흘러도 즐겁게 지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고, 다른 프로젝트와 협업하기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있었던 일 또는 제주와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요.

카페를 오픈한지 4년 정도 되니 단골은 물론, 예전에 방문했던 여행객의 재방문이 이어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업자와 고객으로 만나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제주의 자연이 저에게 베풀어준 만큼
저도 자연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별한 신념 같은 게 있을까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셔도 좋아요.

작년 연말에 <SELF PORTRAIT WITH PUBLIC CORNER 2023>을 보고 깨달은 ‘디지털 아멘’은 제 삶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는데요. 삶이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 표현, 판단, 실행되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습니다. 저는 자연과 사람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고요.

 

제주에 사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주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곳이죠. 하루의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고 오픈 직전 매장에 흘러나오는 첫 곡을 들을 때, 절기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때, 사랑하는 아내와 무탈하고 감사한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런 기분이 듭니다.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워커로서의 삶, 어떤가요.  

제주나 도시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똑같지만 속도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삶의 모양새, 그러니까 일하는 방식이나 스트레스 강도는 비슷하지만 회복되는 시간이 빨라요. 10분 거리에 숲과 바다가 있으니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푸르고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색하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느린 템포로 나를 쉬게 할 수 있죠.

 

섬에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나요. 나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가 나답다는 말과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주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은 것을 보니 나와 닮은 순간을 많이 마주하는 곳인 것은 분명하네요. 아름다운 것을 잘 기억해 그것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스스로의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는 것이 나다움, 조현수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현수

제주를 찾는 워커를 위해 좋아하는 영감의 장소를 알려주세요.

한라산 둘레길입니다. 한라산 둘레길은 탐방로가 안전하고 컨디션과 체력에 맞춰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으면 되어서 좋습니다. 경사가 있는 등산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멋진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퇴근 후 아내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쉬는 날이면 가까운 오름을 오르거나 돌고래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시나 공연에서 예술가의 작품으로 좋은 영감을 받을 때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또 일처럼 여길수도 있지만 여러 하이킹 행사에 스텝으로 참여해 좋아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할 때 진정한 쉼과 행복을 느낍니다.

ⓒ조현수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요.

자연이 저에게 베풀어준 만큼 저도 자연에게 쓸모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글, 사진 | 콘텐츠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