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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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 & 사쿠
@kiwibrownsurf
이호테우에서 서핑 강습과 보드 대여 등을 제공하는 서프샵 키위브라운을 운영한다. 송희는 업무 차 제주에 내려왔다가 서핑에 빠져 제주에 터를 잡았다. 이호테우 로컬 사쿠는 도마뱀 같은 삶을 꿈꾼다.
키위브라운 로고가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처음 만나 제주의 이호테우 해변에 정착하게 되었나요.
송희 사쿠는 원래 이호테우 사람입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호에서 해녀로 활동하셨고 본적이 이호죠. 우리는 이호테우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가 만났어요. 이호테우 파도가 되게 까다로워서 사쿠에게 서핑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하다 가까워졌어요. 함께 서핑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결혼했지요. 그 후 반 년 간 함께 남미 페루에 서핑 훈련을 다녀온 후, 사쿠의 고향인 이호테우에서 서프샵을 열었습니다.
사쿠 키위브라운은 예전부터 서프숍 이름으로 점찍어 두었어요. 키위라는 단어는 예쁜데 ‘키위서프’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캘리포니아 서프 트립을 갔는데, 산오노프레 해변에서 정말 멋진 브라운색 벤을 보았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색바랜 브라운 투성이었습니다. 우리의 눈동자도, 동양인의 브라운 색이고요. 두 단어를 조합해서 키위브라운이 됐어요.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또는 행위) 세 가지를 꼽는다면.
송희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서핑하기, 개와 함께 스케이트보드 타기, 서프샵에서 하는 디제이 파티.
제주에서 살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요.
송희 얻은 것은 서핑, 남편, 너구리(강아지)요. 잃은 것은 걸어 다니기. 제주에 오기 전에 대도시에서만 살았어요. 여기 저기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도시 구석 구석을 관찰하고,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서 국수 한 그릇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죠. 제주에서는 차를 타는 생활을 하다 보니 도시의 관찰자 놀이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사쿠 제주에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원했던 모습의 서퍼가 되었어요. 잠깐 서울에 살았지만, 제주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제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서프샵도 가지지 못했을 거고요.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워커로서의 삶, 어떤가요.
송희 일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육지에 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어쩌면 더 삭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천지에 근사한 자연이 있는지 누리질 못하니까요. 제주의 워커라 자신을 규정하려면, 스스로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이곳의 자연과 바이브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주는 반드시 보답해 줄 거예요.
사쿠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주변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좋은 것들을 찾으려고 해야 제주의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Je m’en fous 주망푸, 내가 중요시하고 몰입해 있는 일외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송희 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이기도 한 쥬망푸티즘, 그러니까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정해진 길이 있고 주류가 있대도 나만의 방식을 시도하는 것. 그게 저 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종종 파도를 타야 저 다운 삶이겠죠.
사쿠 저는 도마뱀처럼 살고 싶어요. 1년쯤 전에 집 근처에서 하얀 도마뱀을 주웠어요. 유기되거나 도망친 것 같았는데,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키우기로 했어요. 이름은 짐 모리슨이요. 너구리가 모리슨을 진짜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도마뱀은 자기보다 훨씬 큰 개한테 하나도 쫄지 않았어요. 턱을 한껏 부풀려서 고개를 쳐들고 너무 용맹하게 대응하니까, 오히려 너구리가 뒷걸음질을 치더라고요. 우아하고, 민첩하고, 본능적이고, 당당하고, 뻔뻔하고, 짐모리슨을 수식하는 말이 너무 많아요. 그런 모습이 사쿠다움이 되길 바라요.
워커로서 스스로가 멋지게 보일 때는 언제인가요.
송희 키위브라운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인간적인 관심이 있어요. 단순히 강습생이나 손님으로 보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 노력하죠. 처음 만나는 사람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만족시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성향이나 성격을 알 것 같을 때가 많거든요. 그룹 수업을 하다 보면 규모가 커지기도 하는데 모두가 ‘프라이빗 서핑 강습’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목표예요. 끊임없이 고민하는 스스로가 참 일꾼 같죠.
사쿠 가장 경계하는 건, 강습하면서 ‘저기요’, ‘여성분’, ‘남성분’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강습 시작 전 손님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요. 꾸준히 방문하는 멤버십 회원은 집에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죠. 서핑을 잘하려면 일상 생활이 충만하고 안정되어야 해요. 서핑을 열심히 할 환경인지 살피는 자신을 발견할 때에 생각합니다. 우린 진짜 멋지고, 무조건 잘 될 수밖에 없다고.
제주에서 좋아하는 곳, 또는 가장 제주다운 곳은 어디라고 생각해요.
송희 키위브라운샵이라고 해도 될까요? 거쳐온 여러 만리타국의 모든 색깔을 다 담은 아주 이색적인 장소입니다. 또 제주 하도리 해변이요. 월정, 세화를 지나 더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작은 해변인데요. 상점이 많지 않고 섬마을 그대로의 모습이 꽤 원시적이에요.
사쿠 구제주, 탑동, 관덕정이요. 맹그로브가 생길 곳이기도 한데요. 이 올드 타운을 정말 좋아합니다. 스케이트 보드 타러 자주 가고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점이 많아서 레트로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제주라고 하면 보통 자연을 많이 떠올리지만, 너무 낡아서 오히려 사이버펑크적인 마을도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송희 밤을 좋아합니다. 일과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옛날 음악 들으면서 글을 쓰거나 읽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벽 서핑을 자주 못 나가요.
사쿠 아무도 없는 숍을 청소하고 정원을 가꾸고 식물에 물을 주면서 좋은 앨범을 들을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각종 장비를 수리하고 정비할 때, 서퍼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행복합니다.
글, 사진 | 콘텐츠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