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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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영
@iiinjeju
로컬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다. ‘살아보는 여행’콘셉트로 <인iiin> 매거진을 창간했고, 사라졌던 제주 니트 브랜드 한림수직을 재생했다. 지역 고유 자원 기반의 로컬 비즈니스에 지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여행 기자였다니, 정말 신났을 것 같아요.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100개가 훨씬 넘는 도시를 취재했었죠. 마감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출장이었으니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꽤 길었고요. 어느 순간 비행기를 그만 타고 싶었고 마감에 쫓기며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제주에 왔는데, 두어 해가 지나자 결국 마감 생활자의 삶으로 돌아갔어요. 2014년 인iiin 매거진을 창간했거든요. 종이 위 텍스트를 오프라인 콘텐츠로 넓히는 사업도 펼치고요. 제주에서 비로소 일하는 게 노는 것이고 놀 때 일이 제일 잘 된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일종의 일 중독자예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는 참 다양한 일을 하잖아요. 진행했던 작업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일은 인iiin 매거진에서 시작해요. 기사로 큐레이션 한 제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화 하죠. 제주 음식을 연구하는 인테이블iiinTable, 제주 스몰 브랜드를 소개하는 인스토어iiinStore 등을 비롯해 로컬 관련 연구와 브랜드·F&B 개발, 콘텐츠 제작·전시 그리고 한림수직 브랜드를 운영해요. 코로나 기간 중 2년 동안 진행했던 <계절제주>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인iiin 매거진은 제주의 생산자 이야기를 잘 다뤄요.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원물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계절마다 매거진에 제철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푸드키트를 더해 배송하는 정기구독 서비스를 운영했죠. 가파도 해녀들과 함께했던 뿔소라 리소토, 꼬박 1년을 길러야 맛볼 수 있는 구엄토종닭 백숙, 제주 밭벼인 산듸와 제주 나물을 곁들인 솥밥키트 등을 선보였어요. 독자들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고요. 식품 물류가 어려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여력이 된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죠.
대략 하루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아침에 출근해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며 노루 꽁지만큼 짧은 평일을 보내요. 늘 그렇죠. 금요일 밤이면 늘 맥주를 곁들여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주말에는 늦잠을 자고 오후에는 거의, 언제나 제주를 방문한 손님을 만나 하하 호호 떠들어요. 끝.
스스로에게 늘 묻는 것은, ‘그래서 재밌어?’에요.
저는 재미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사람을 만나도 무엇인가에 몰두할 때도 종종 질문해요.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워커로서의 삶,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매우 일 중심의 사람이라, 일이 술술 잘 진행될 때 가장 큰 행복함을 느끼고 잘 안 풀릴 때의 괴로움도 조금은 즐겨요. 어차피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가 된다는 걸 알고, 동시에 풀리지 않은 일을 풀어낼 때 느끼는 희열도 있고요. 제주는 그런 면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큰 도움이 돼요. 매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한데, 맑은 공기, 반짝이는 바다, 나지막한 건물들과 다정한 돌담, 거친 듯 보이나 누구보다 속 깊은 제주 사람들까지. 제주에서 일하고 살면서 거의 나다움을 회복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섬사람이 되어가는 일이요. 계절의 변화에 몸이 반응하고,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동화되죠. 새삼 제주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스스로가 근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요.
최근 이사한 새 오피스가 탑동 바닷가에 있어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출근 길이 재미나요. 조금 시간이 난다면 서쪽 동일리, 일과리 쪽 해안에 자주 출몰하는 돌고래 구경하기도 즐겁고요. 물론 멀찍이 서서. 또 떠들썩한 제주민속오일장날 구경하기, 짙은 봄날 제주대 벚꽃길 걷기, 여름날 5.16도로의 숲 터널을 지나기, 몹시 더운 날 돈내코 계곡에 풍덩 빠지기 등이 있어요.
혹시 특별한 신념 같은 게 있을까요.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좋아요.
스스로에게 늘 묻는 것은, ‘그래서 재밌어?’예요. 재미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사람을 만나도 무엇인가에 몰두할 때도 종종 질문하죠. 무엇을 해도 재미없게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싫은 게 없잖아요. 사실 재주상회의 모든 일은 누군가에서 “그래서 재미있나요?”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요.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재미난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최근 있었던 일 중 제주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전 세계 항공 노선 중 수송객 1위의 단일 노선이 바로 김포-제주 노선인데요. 어느 일요일, 간만에 날이 화창해 창문을 열었더니 연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도 신기해 10분에 몇 대 지나가는지 세어 봤더니 6대였어요. 일요일 오후라 부쩍 많기도 했겠지만, 여하튼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죠.
제주를 찾는 워커를 위해 좋아하는 영감의 장소를 소개해주세요.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사계리 용머리해안이에요. 그곳에 들어서면 지구가 아닌 행성에 서있는 느낌이 들어요. 익숙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의외의 장면을 맞닥뜨렸을 때를 가장 좋아해요. 새로운 상상력에 스위치가 켜지거든요. 용머리해안에서 늘 그래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인 르부이부이에서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한 병 시키고, 기가 막히게 시어링이 잘 된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고 와인을 마시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어요. 또 몹시 추운 겨울날 기름기 잘 오른 대방어 뱃살을 회 떠서 차가운 청주를 곁들이는 것도 좋고요. 맛있는 걸 먹을 때가 제일 나다운 것 같기도 하네요. 여하튼, 빨리 겨울이 오길 바랍니다. 방어 먹어야 하거든요.
글, 사진 |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