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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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헌 & 김지희
@_o.archi
제주의 마을을 기록하며 친숙한 마을의 풍경에서 건축과 일상에 대한 가치를 찾는다. 건축사사무소 오 공동 대표로, 제주에서 건축사로 활동한다.
‘장소성을 가진 일상의 건축’이 오의 작업 콘셉트이자 목표라고요.
‘장소로서 의미를 갖는 것’에 대해 집중합니다. ‘의미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여러 과정을 풀어나가죠. ‘제주동네수집’도 그 일환이고요.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최초로 공간을 경험을 하고 기억을 쌓아요. 기억이 어떤 의미를 지닐 때, 공간은 장소로 변해요. 우리는 일상적 기억이 쌓여 장소가 될 수 있는, 장소로서 의미를 가지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기술자’가 아닌, 지역과 동네 서사, 건축과 사람 사이의 연결점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죠. 건축가로서 제주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지희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녹아 있어요. 동네를 산책하면서 그 방식을 채집할 수 있죠.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공동체 문화가 잘 남아있어요. 민가의 형태가 잘 보존돼 있고, 단독 주택 형식의 주거가 보편적이어서 보다 일상적인 부분들을 많이 수집할 수 있어요. 흥미롭죠.
정헌 제주라는 환경은 특별해요. 어떠한 것이든 제주의 영향을 받아요. 대체로 투박한 스타일이라 재료의 물성이 잘 드러나는데, 그 안에서 디테일함이 숨어있죠. 마땅히 의도한 디테일이 아닌데 자연스러운 것이 제주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선으로 제주 동네를 관찰해요.
평범한 것을 다양하게 해석해 새롭게 느껴지게 만들죠.
작업 중 개인적으로 의미 있거나 아끼는 것이 있다면요.
지희 보통 사람을 위한 일상적인 집을 짓고 싶다는 일념으로 제주에 왔는데요. 출발점이 되어준 프로젝트가 ‘월정소굴’이에요. 첫 주택 설계작인데, 그때 건축주와 많은 레터를 주고받으면서 세심하게 설계했어요. 그때 맞추었던 호흡으로 집에 대한 태도를 고양시켰고, 건축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을 줬죠.
정헌 ‘앙데팡당’입니다. 애월에 있는 옛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인데요. 쓰임이 다한 공간을 재생하고, 기존의 기억에 새로운 기억이 덧씌워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어요. 오건축이 바라보는 건축적 재생이 잘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정헌 시선이 바뀌는 걸 느껴요.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삶으로요.
지희 여유롭고, 나에게 충실할 수 있는 삶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즉각적으로 나에게 충실할 수 있는 순간을 부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는 게 매력적이죠.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세 가지를 꼽는다면.
지희 제주에서 건축을 하고, 산책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거요. 가끔이지만 여행하듯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이를 모두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도요.
정헌 우연히 만나는 동네의 디테일, 건축가 없는 건축을 발견할 때, 노을보는 것과 비 오는 날 우비 입고 산책하는 것이요.
제주에서 좋아하는 곳, 또는 가장 제주다운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정헌 일도이동이요. 제가 일도이동 키즈이기도 하고요. 최초로 만난 제주이고,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제 안에서 융화돼 무언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거든요. 제 우주는 일도이동에서 시작했어요.
지희 한라산이요. 섬의 중심부를 가득 채운, 언제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내는 한라산이 제주다움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랜드마크이죠. 한라산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한라산 둘레길을 참 좋아하는데, 최소한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신비로움이 있어요.
영감을 얻는 제주의 특별한 곳이 있다면요.
지희 구도심이요. 일도동에서 삼도동 일대, 제주대학교 등 1970~1990년대 사이에 지어진 건물과 당대의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에서 나오는 흡입력이 있어요. 또 조적공, 도장공, 이름을 알 수 없는 건축가의 건축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이 있고요. 동네마다 특징이 조금씩 다른데,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죠.
정헌 할머니집 평상이요.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앉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정헌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해요. 어릴 적 집 툇마루에서 맡았던 비냄새의 기억이 선명해요. 비가 갠 후의 새로움도 놀랍죠. 일상적인 환경이 비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물리적으로 분명 동일한 공간인데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지희 혼자 쉴 때는 가만히 의자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오롯이 순간에 머물면서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관찰하고 바람에 부딪히는 숲과 새소리 등에 귀를 기울여요. 함께 쉴 때는 산책하면서 대화에 집중해요. 특히 좋아하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비 옷을 입고 몸과 부딪히는 비를 느끼며 걸어요. 그러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최고죠.
섬에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나요. 그것을 정의한다면요.
정헌 오정헌다움은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선이죠. 평범한 것을 다양하게 해석해 새롭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제 강점이에요. 그 시선으로 제주 동네를 관찰한답니다.
지희 내가 가진 것을 잘 알고, 그것을 확장하고 다듬어 나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는 제주는 저에게 중요해요. 제주에서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소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김지희다움을 형성해요.
글, 사진 | 콘텐츠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