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적한 길을 걸으면 걱정도 걱정이 아니에요

2024.11.18

스틸네거티브클럽 | 박성욱 & 구태은

<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박성욱 & 구태은
@stillnegativeclub

개인의 아카이브, 기록의 가치, 오래된 것들의 재발견에 기반을 둔 활동을 펼치는 스틸네거티브클럽을 운영한다. 각각 사진가와 에디터로 활동하며 서귀포시에서 소품과, 사진, 필름 등을 판매한다.

 


 

스틸네거티브클럽은 어떤 곳인가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스틸네거티브클럽은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에서 시작했습니다. 서귀포 동홍동에 위치한 오프라인 공간은 현상실과 라운지로 구성해 여러 소품과 음료를 판매하고, 현상실에 필름 현상과 스캔, 인화 등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소셜 모임과 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데요. 현재는 함께 산책하며 필름 1롤을 촬영하는 ‘산보와 사진’을 한 달에 한 번 엽니다.

 

다양한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이름났고 또 감각적 인테리어로도 유명하죠. 어떤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하나요.

성욱 올해로 운영한지 4년이 넘었네요, 그간 내부 공간을 종종 바꿔왔는데요, 처음에는 작업실과 함께 있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사무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했어요. 이후엔 라운지에 머무는 동안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바꿨고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영감을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예요. 사진처럼 삶의 어떤 부분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게 요즘에는 특별한 일이잖아요. 기록하는 행위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걸 상기시키고, 그런 자극을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가 개인 아카이빙으로 이어지게 하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다양한 사진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죠. 개인적으로 의미 있게 여기는 작업물이 있나요.

성욱 아트&디자인 컴퍼니 에이오피시즈Aeoffices와 함께 한 협업이요. 에이오피시즈를 운영하는 두 친구가 기획, 디자인, 제작한 농기구에서 착안한 디자인의 행거를 찍었어요. 귤 창고에서 실제 농기구와 촬영했죠. 제주에 내려와 ‘제주의 것’을 주제로 한 첫 작업이었고, 의뢰했던 친구들이 필름 사진을 선호해서 필름으로만 작업할 수 있었던 점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행위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성욱 아침 숲 걷기, 바다에서 서핑하기, 차 없는 마을 길 러닝.

태은 사람이 없는 대자연을 보는 것, 바다를 따라 산책하는 것, 한라산 어리목코스 오르는 것.

이 곳을 영감을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처럼 삶의 어떤 부분을 손으로 만지는 게 요즘에는 특별한 일이잖아요.

제주에서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성욱 6시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뛰어요. 이후 작업실에서 개인 작업 후 10시에 스틸네거티브클럽으로 출근하죠. 퇴근 후엔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영화를 보거나 산책합니다.

태은 일단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오전에는 개인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스틸네거티브클럽으로 나가요. 저녁엔 성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요. 휴일이 더 바빠요. 스틸네거티브클럽 재정비는 물론,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 중이라 에디터 업무를 마무리하고요. 작은 숙소도 운영하고 있어 손님 맞을 준비도 하고, 함께 산보할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스노쿨링이나 바다 수영 같은 액티비티가 추가돼 더 정신이 없네요.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워커로서의 삶, 어떤가요.

성욱 자연 속에서 일 하진 않지만 언제든 찾아갈 숲과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됩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도 자연에서 회복하면 더 빠르죠.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태은 맞아요. 길에서도 한라산을 볼 수 있고,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는 일이 일상에 어우러져 있죠. 집 근처로 잠깐 산책을 나가도 어마어마한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와요. 서울에서보다 일을 느슨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스트레스는 훨씬 덜 받아요.

 

이 섬에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성욱 서울과 비교한다면, 그렇죠. 이전엔 다른 이들이나 세상의 기준 같은 것에 맞추기 위해 애썼단 생각이 들어요.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교를 많이 했어요. 제주에서는 좀 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을 하고, 그것을 하려고 시도해요. 나다움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어려워서, 아직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 baksungwook

제주를 찾는 워커를 위해 영감의 장소를 추천한다면요.

성욱 요즘 자주 가는 곳은 외돌개가 있는 해안입니다. 스틸네거티브클럽과 가까워 환기가 필요할까마다 종종 찾아요. 절벽 끝에 앉아서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영감을 많이 받곤 합니다.

태은 저는 자주 가진 못하지만 용머리해안 좋아해요. 가면 다른 행성에 온 것 같고, 뭔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어 생각도 트이고 기분 전환이 되거든요. 겨울에는 한라산 등반 코스, 특히 어리목코스 좋아해요. 용머리해안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성욱 정신없이 일하다 가게를 마치고 근처 바다를 가거나 숲을 갑니다.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걱정도 걱정이 아니게 되는 여유가 생깁니다.

태은 저도 걷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특히 머리 식힐 때, 생각 정리할 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는 무조건 나가 걸어요. 제주도에서 살며 가장 좋은 점은 역시 가까이에 탁월한 나만의 산책 코스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산책길에서 사람과 부딪힐 일이 없는 것도 장점이고요. 실내에서 짧은 시간 내 충전이 필요할 때는 명상을 하고, 몸이 피곤할 땐 바람이나 해가 적당한 날 바닷가에서 커피 한잔이랑 평소 읽고 싶던 책을 읽으며 커피 빈둥대는 걸 젤 좋아해요.

 


 

글, 사진 | 콘텐츠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