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을 멋지게 해내는 것, 그것이 내 삶이라 여겨요

2024.11.18

돌빛나예술학교 | 조환진

<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조환진
@dolbitna_art_school_jeju

돌 쌓는 방법은 물론 제주의 돌 문화를 알리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돌빛나예술학교 대표. 돌챙이(돌 쌓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돌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어떻게 돌담과 인연을 ‘쌓게’ 되었는지 보았어요. 제주 돌담의 결정적 매력 또는 운명과 인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아버지가 돌챙이였으나 삼형제 중 내가 물려받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그림을 그리면 행복했어요. 그런데 잘 하진 못했어요. 취미인 사진도 마찬가지였어요. 돌을 쌓았는데,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됐죠. 아버지에게 인정도 받고요. 그렇게 쌓다 보니 돌이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재미있었죠. 제주의 돌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입체감이 대단해요. 그냥 쌓는다고 쌓아지는 게 아니죠. 돌을 쌓는 방향과 방법에 따라 돌이 딱딱 맞아갈 때의 쾌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잘 쌓은 돌은 2만 년도 가요. 그 지속성에 해서 인연을 쌓고 있네요.

돌빛나예술학교의 커리큘럼을 소개해 주세요.

정규 프로그램은 동료 돌챙이들과 함께 매달 진행하는 제주 전역의 돌담 보수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요. 학교나 단체 등에서 의뢰한 돌담 쌓기 수업도 진행하고 제주 돌챙이 자격시험도 치르죠. 제주에 건축 붐이 일면서 엉터리로 돌담 쌓는 일이 많아졌거든요. 옛 돌담 쌓는 방식도 조금씩 사라지고요. 전통적인 돌 쌓는 방식은 오직 돌만 써요.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시험을 치릅니다. 올해 돌챙이 자격시험도 치렀는데, 8명이 응시했고 4명이 합격했어요. 시험에 통과하기 꽤나 어렵거든요!

 

세 자녀 중 누군가 돌챙이가 되겠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이미 중학생인 막내아들을 꼬드기고 있어요. 약간의 노동비(!)를 지급하면서 휴일에 조금씩 돌 쌓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죠. 아버지와 함께 지었던 신혼 돌집의 기억이 선명하고, 그만큼 그 집도 소중해요. 아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나는 이 섬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어요. 섬 밖의 것을 동경했던 기억도 거의 없네요. 지금 이곳에서 나의 일을 멋지게 해내는 것, 그것이 제주에서 내 삶이라 여겨요. 제주에서 돌을 쌓고, 동료 돌챙이들과 작업하고, 멋진 돌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돌을 만지는 그 순간이 가장 나다워요.
돌을 쌓고 제주의 돌담과 돌챙이의 시간과 역사를 기록하는 것, 내가 해야할 일이에요.

ⓒ돌빛나예술학교

요즘 몰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난해부터 문수동에서 매년 10월 돌챙이 축제 <문수동, 돌 자파리>를 열어요. 문수동은 3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인데, 100년 전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돌을 깨고 다듬어 축조한 돌 구조물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또 제주4·3 때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두른 성담도 일부 존재해요. 일곱명의 대단한 돌챙이가 있었고, 그들의 아들 중 두 명이 돌챙이의 길을 걷고 있으며, 제주 최초의 돌담학교인 돌빛나예술학교가 있죠. 문수동의 돌챙이 역사를 조명하고 사람들이 돌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돌 자파리(장난) 체험 프로그램도 준하고요. 매년 이맘때면 축제 준비로 굉장히 분주해요.

 

 

최근 아일랜드에 돌담을 쌓으러 갔다고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도 돌담 쌓는 문화가 선명히 남아있죠. 돌문화공원의 도움으로 각 나라의 돌 전문가와 교류를 시작했어요. 아일랜드를 찾기도, 그들이 문수동 돌챙이 축제를 오기도 했고요. 삶의 방향이 ‘돌’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대화는 정말 값지고 의미 있습니다. 제주의 돌 문화를 어떻게 기록하고 보존할지 인사이트도 얻고요. 최근 아일랜드에 방문했을 때는 돌하르방을 남기고 왔답니다.

 

돌담 작업 중 개인적으로 의미있거나 가장 아끼는 작업물은 어떤 것일까요.

청수리에 지은 돌창고요. 의사이면서 비파 과수원을 운영하는 개인이 의뢰한 창고인데, ‘작품’을 지어달고 요청받았어요. 마땅히 요구하는 것도 없었고 빨리 기한을 재촉하지도 않았죠. 심혈을 기울여 돌을 쌓았죠. 완성된 뒤에는 사람들이 상업 공간으로 알고 들어오고 그랬어요.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데, 근래에 가장 애써서 지은 작품이었네요.

 

제주를 찾는 워커를 위해, 좋아하는 영감의 장소를 알려주세요.

독특한 돌담들이 있는 마을을 소개하고 싶어요. 고향인 한림읍 문수동 외에도 제주시 내도동에 가면 현무암 몽돌을 쌓아 올린 특별한 돌담과 집이 꽤 남아있고, 귀덕리 밭담도 굉장히 아름답죠. 기회가 된다면 밭담해설사가 운영하는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권해요. 밭담을 따라 걸으며 제주 마을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흥미롭답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나요.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오가며 스치듯 본 예쁘거나 독특한 돌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러 가요.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요. 또 저만의 돌담을 쌓죠.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공간을 위한 돌을 쌓으면 어지러운 마음이 차곡차곡 정리돼요.

어떤 돌챙이가 되고 싶은가요.

문수동에는 이름난 돌챙이 일곱 분이 있었어요. 그 중 최초의 전문적인 돌챙이이자 전설로 남은 분이 양병옥 선생이에요. 동네 사람들에게 돌담 쌓는 기술을 전수하고 함께 일하러 다녔어요. 한림읍에 있는 한림 천주교 성당의 종탑도 양 선생의 작품이에요. 나는 돌 쌓는 실력뿐만 아니라 작품성이 담긴 돌담을 남기고 싶어요. 오래전 제주의 돌챙이가 먹고사는 일의 워커라 했다면 앞으로는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

 


 

글, 사진 |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