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맹의 제주 워커스>
10 Jeju Workers
제주 로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워커 10인을 만납니다. 제주의 헤리티지를 보존하고, 제주 밖으로 제주를 알리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제주에서 펼치는 라이프스타일과 근사한 작당모의를 살핍니다.
*제주 방언으로 ‘명’을 ‘맹’이라고 해요.
–
박은희 & 김하영
@donwoori_behaenyeo
최근 정식 ‘아기해녀’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각각 인스타툰 ‘돈우리 비해녀’ 그림작가와 글작가로 활동한다.
어떻게 해녀의 삶을 시작하게 됐나요.
은희 처음에는 ‘제주를 사랑하는 관광객’ 정도였죠. 막연하게 한 번은 제주에 살고 싶다는 바람이 한 달 살이로 이어졌어요. 꿈같던 제주 생활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니 제주가 더 그립더라고요. 제주에서 1년은 살아보자는 마음을 먹었고, 이왕이면 ‘제주스러운 일’을 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고령화로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 해녀’라는 기사를 봤고, 해녀가 되겠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2022년 제주에 왔습니다.
하영 육지 생활에 지쳐서 제주에 왔어요. 노을과 바다나 실컷 보면서 1년은 푹 쉴 생각으로요. 어느 날 우연히 물질을 마친 해녀들을 보았는데 첫눈에 반했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네요. 푸른 바다와 하늘 앞으로 오렌지 컬러의 테왁을 맨 해녀들이 지나가는데 마치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보였어요. 집으로 돌아가 곧장 해녀를 검색했고, 해녀 학교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네요.
바다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은희 바다에 들어갈 때는 동료와 함께하지만 잠수하는 순간 오롯이 혼자거든요. 나의 숨과 몸, 마음까지 컨트롤할 때 진정으로 저를 돌보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틈틈이 주변 동료들을 확인해요. 너무 멀리 가진 않았는지, 몸 상태는 괜찮은지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요. 그럼 다시 바다와 저만의 시간으로 들어가요. 어렵게 말했는데, 대체로 행복하단 뜻입니다.
하영 매일이 재미있어요. 매일 변하는 하늘과 바다의 날씨, 바닷속 풍경까지 같은 게 없어요. 특히 아침 일찍 물질을 시작하는 날에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을 보는 게 가장 좋고요.
이 숨 그대로 욕심내지 않고 바다가 허락할 때까지
잔잔하게 오래도록 물질하는 게 목표입니다
바다를 향한 특별한 신념 같은 게 있을까요.
은희 바다에 들어가기 전 근심, 걱정은 뭍에 두고 들어가는 거요.
하영 두려워하지도, 조급하지도 말고 바다에서는 늘 자유롭고 즐거우려고 해요.
해녀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요.
은희 8시쯤 바다로 출근하는 날 기준으로, 하루 일과는 이래요. 새벽 6시쯤 일어나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7시 30분까지 해녀탈의장에 도착해서 물질 준비를 마칩니다. 9시면 회장님이 바다 상황을 확인하고 진두지휘를 시작하죠. 보통 10시쯤 물질을 시작하고 3시간 정도 근무해요. 뭍으로 나와 샤워 후에 믹스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하루 내용을 브리핑하고 4시쯤 퇴근하죠.
하영 계절, 그러니까 수확하는 생물에 따라서도 주기가 변해요. 겨울엔 주로 귤 따러 가는 이가 많아서 물질은 쉬고요. 봄가을에는 뿔소라를 잡으러 물때에 맞춰 출근하죠. 한 달에 열흘 정도요. 여름은 성게철이라 바빠요. 물질이 끝나고도 점심을 먹고 작업장에서 성게알을 까거든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이라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죠.
수확이 좋았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희 올해 초 해삼을 따러 열심히 해삼 똥을 찾아 해삼 4마리를 잡고, 처음으로 문어와 눈이 마주쳤어요. 해삼은 식당에 팔고 문어는 문어 숙회와 라면, 버터구이로 아주 맛있게 먹었답니다. 문어야, 고마워!
하영 물질을 시작한 첫 해, 저는 늘 수확량이 꼴찌였어요. 물론 지금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는데 그날 운이 좋았는지 컨디션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3배나 많이 소라를 땄어요. 회장 삼춘이 ‘애기 상군이네. 속암쪄(속았어)’ 하면서 웃었는데 그 미소가 잊히질 않네요.
제주에서 좋아하는 곳, 또는 가장 제주다운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은희 각자의 속도와 개성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곳, 바로 서귀포 남원읍 공천포요. 해녀가 되기 전에는 사려니숲길을 걷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비오는 날의 비자림도요.
하영 바다라고 말하면 너무 뻔할까요? 가장 제주답고, 아름다고 생각해요. 반짝이는 바다와 파란 하늘은 늘 위로가 돼요.
어떤 방식으로 무얼하며 휴식할 때 가장 행복하나요.
은희 도시락을 싸서 정처 없이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인적 드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카크닉을 즐겨요. 사실 이건 아주 부지런히 일어났을 때만 가능해요. 불규칙하게 일을 하니까 쉬는 날이 매우 귀해서 쉬는 날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알차게 계획을 세워요. 그리고 그 계획을 무자비하게 지키지 않는 게 특기고요.
하영 고양이랑 낮잠자는 거요. 제주도에 와서 키우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요. 이름은 연유예요. 엄청 껌딱지 고양이라 보통 제 팔이나 배 위에서 잠을 자요. 쉬는 날 고양이랑 하루 종일 뒹굴거리고, 바다 보이는 거실에 누워 낮잠자면 그게 그렇게 행복해요.
제주에서 일하며 사는 워커의 삶, 어떤가요.
은희 사실 물때가 아닌 평일엔 옷가게에서, 주말엔 심야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요. 또 해녀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인스타 툰 ‘돈우리 비해녀’ 그림작가로 활동하고요. 여유를 찾으러 제주에 왔지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죠. 가끔 ‘내가 이러려고 제주에 왔나?’ 싶을 때 주변을 한 번 돌아봐요. 그럼 둥그런 하귤이 주렁주렁 달린 가로수와 높이 솟은 야자수, 까만 돌담이 눈에 들어와요. 물질 중 잠깐씩 보는 한라산을 떠올리고 퇴근 후 윤슬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을 상상하며 마음을 달래죠. 그럼 금세 ‘그래 이러려고 제주에 왔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영 육지에서는 워낙 규칙적으로 살아서 일이 들쑥날쑥한 해녀의 삶에 적응하기가 처음엔 어려웠어요. 일정이 불규칙하니까 오히려 자유로움이 줄어들더라고요. 그런데 적응하니까 괜찮아요. 틈틈이 나는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글, 사진 |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